나는 7살 때 서울 동작구 노량진2동으로 이사를 왔다. 

할머니와 같이 살던 동네로 중학교 3학년까지 9년을 산 동네이다.

지금은 노량진과 가까운 흑석동에 살고 있다. 


그래서 노량진을 가는 버스를 볼때마다 잠시 내려서 내가 여려서부터 살던

동네를 다시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하지만 좀처럼 내려지지 않는다.

나는 어느 누군가 나에게 넌 언제 가장 행복했느냐? 묻는 다면, 당연 친할머니와 같이

살던 시절이다.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할머니의 가장 아픈 손가락이었던 나를 키워주셨다.

아픈 손가락이었던 나를 키우기위해 할머니께서는 자식들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고 

이러한 이유로 친척들에게 미운털이 박혔었다. 

그래서 할머니와 있는 공간이 가장 편했고, 좋았다. 그래서 잠시나마 할머니와의 추억을 더듬어보고 싶은 마음에 재작년에 다녀왔던 사진을 보면서 나의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내가 살던 동네 노량진에는 가장 행복한 기억과 가장 불행한 기억이 같이 공존하는 곳이다. 

가장 행복했던 기억은 사랑하는 할머니와 살았던 것이었지만. 가장 불행했던 기억은 

우리 아버지가 두번째로 가슴 아프게 이혼을 한 동네이다. 

우리 아버지는 철이 없던시절 첫 결혼을 하시고 나를 낳으셨다. 하지만 이 결혼생활은 

오래가지 못하고 이혼을 하게 되었고, 어린 나는 우리 할머니 손에 맡겨졌다. 



이후 내가 6살때로 기억한다. 아빠는 날씬하고 예쁜 새어머니를 모시고 할머니 댁으로

온적이있다. 갑자기 나의 친어머니라며 엄마라고 부르라고 하는 것이었다. 

내가 어렸을 적 엄마가 돈을 벌러 미국에 갔다가 지금 오셨다고 할머니는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사실 그분이 생모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내가 우리아버지의 첫 이혼을 알게 된 계기는 3살때 할머니의 오래된 보물 옷장에서 

발견한 아버지의 이혼서류에서 였다. 당시 나는 한글을 띄엄 띄엄 읽을 수 있었다. 

이혼서류의 의미를 몰랐던 나는 셋째큰어머니와 드라마를 보다가 이혼에 의미를 묻게 되었는데 부부가 헤어지는 것이라고 설명해 준 것이다. 큰어머니는 아무래도 내가 드라마에서 본 걸 물어보신거라 짐작하신 것 같았다. 


하지만 할머니께서 거짓말을 하시는 모습이 어린 마음에 내가 새엄마라는 사실을 알게 하면 안되겠다는 생각이들었다.그 이유는 온가족 온 어른들이 거짓말을 하는 모습 때문이었다.

할머니의 거짓말을 믿는 척했다. 

내 연기가 완벽했는지 할머니는 내가 새엄마를 잘 따르는 모습에 내심 안심을 하시면서도 서운한 마음이 있으셨던 것 같다.

나는 어린 나이었지만, 내가 얼른 새엄마랑 잘지내야 할머니가 덜 힘들고, 작은 아빠 

작은 엄마의 핀잔을 듣지 않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새엄마라는 사실을 마음속에 숨긴채 9년간 살았다. 하지만 잠은 할머니와 자고 싶었다. 이것이 나의 본심이었다. 

사람이 잠을 자는 곳은 가장 마음이 편한 곳이아닌가?

나는 새어머니와 아버지가 사는 집이 편하지 않고 눈치가 보였다. 그래서 잠을 잘때만

할머니 품에 얼굴을 묻고 달콤한 잠이 들었다. 어른들은 내가 동생을 갖고 싶어서 그러는 거냐며 기특해 했다. 

바보들.... 내맘도 모르고,,,,,

그러다 질풍노도의 사춘기는 큰 짐같은 비밀을 안고 사는 나를 피해 가지 않았다. 

나는 중학교 당시 새어머니와 에어로빅을 다녔다. 운동후에 샤워를 하는데 수건이 제공 되지 않는 곳여서 매일 챙겨야했다.

근데 내가 실수로 수건을 안챙겼다. 그래서 샤워를 하고 엄마에게

나:"나 수건 안가져왔어 수건좀 빌려줘"

엄마: 니수건 왜 안가져왔어, 수건은 남이라 같이 쓰는 거 아냐 !! 넌 무슨 애가 그렇게 

  정신이 없니 ?

라는 대화를 하게 되었다, 어린 마음에 내가 남이란 이야기인가? 내가 엄마 딸인데 

수건하나 같이 쓰기 싫다는 것이구나, 정말 새엄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는 그때 더 속상했던건 알몸이었고, 같이 운동하는 사람들이 같이 있는 공간이었기 때문에 더 창피하고 속상했다.

나는 그날 그추운 겨울 물도 안 닦고 옷을 대충입고 할머니 집으로 돌아왔다.



위 하늘 색 철문이 나와 할머니가 살던 집이다. 나는 울면서 할머니집의 하늘색 

철문을 쾅 열면서 집으로 들어와 나의 응어리를 풀었다.

할머니!!! 내가 엄마한테 수건 빌려달라고 했다 근데 남이랑 쓰기 싫데!!!

하며 할머니 품에 안겨 울며 말했다,  그리고 내 마음 속 무거웠던 비밀을 털어놓았다.

할머니 나 새엄마인 거 알아!!!!나 안다구 할머니 저혈압으로 쓰러질까봐 그래서 돌아가실까봐 할머니말 믿은거야 

나 엄마 아빠랑 안살아 할머니랑 살꺼야, 난 저 새엄마 필요없어 하며 대성통곡하며

울었다. 할머니는 이 모습을 보고, 놀라셨는지 아무런 말없으셨다.

그걸 알고 있었어? 그 마음이 무거워서 어째 어린 것이 그걸 속에 담고 살았냐며

우셨다.

내가 그렇게 운동센터에서 나왔으니 새어머니께서는 걱정이 되셨는지 할머니 댁으로

오셨던것 같다.근데 그 대화를 그 새어머니가 들으시고, 당황했는지 말없이 집으로 돌아가셨다.

그 사건 이후 나는 아버지 어머니 집을 가지 않고, 할머니 댁에서 다시 생활을 했다.

근데 어느날 갑자기 할머니 집으로 아버지가 급히 전화를 했다.

얼른 아빠집으로 가보라고,,,,,,그래서 나는 싫다고 했다, 그때까지 화가 났던 나였기 때문이다 이에 아버지는 화를 내셨고 나는 뭉기적 거리며 아빠 집으로 갔다. 

근데 그때의 그 집의 차가운 공기를 잊을 수 없다. 

부억 식탁에 하얀 종이 한장의 편지를 발견했다. 그렇게 새어머니는 집을 나가셨다. 

그렇게 두번째 아버지의 이혼을 지켜봐야했던 기억이 있는 곳이다. 

하지만 좋은 추억이 더 많은 곳이라 가 본 것이었다. 

가보고 싶지만, 발길이 닿기 힘든 곳이 었던 것이다. 그래서 할머니와 살던 집을 가는 길목은 좋은 추억이 떠오르지만, 할머니집 앞에 도달하면 왈칵 눈물이 쏟아져

한참을 울다가 오기도 했다. 

할머니 집앞에는 계단이 있는 주택이 있는데 그곳이 할머니께서 늘 앉아 동네할머니들과 이야기를 하던 곳이었다. 

난 그럼 할머니가 앉으셨던 자리에 앉아 할머니를 떠올리다 집으로 돌아왔었다.


사실 어제 치킨을 먹고 체하는 바람에 고생을 했어요, 그래서 인지 할머니가 그리운 마음이 생겨서 포스팅을 하게 되었네요

이상 오늘 포스팅 마무리 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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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칵이 담터댁

사진을 취미로 시작한 28살 어른이 입니다. 즐검게 하루하루를 담아보는 습관을 가져볼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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